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보면,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죠 — 피카소(Pablo Picasso).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를 “스페인 화가” 정도로만 알고,
그가 이 도시 바르셀로나와 얼마나 깊은 인연을 맺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오늘은 고딕 지구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그 수많은 관광객이 지나쳐가는 한 건물의 외벽에 숨은
피카소의 작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그림 — 그런데 피카소의 작품이라고요?
대성당 앞 광장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유난히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회색빛 석조 외벽 위에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그린 단순한 선 그림이 펼쳐져 있죠.
거인 인형이 걷고, 사람들이 춤을 추며, 국기를 흔드는 듯한 모습.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의 프리즈(벽화)입니다.
이곳은 바로 까딸루냐 건축가협회(Col·legi d’Arquitectes de Catalunya) 건물로,
1962년 피카소가 직접 남긴 작품 〈거인, 세녜라, 그리고 아이들 (Els Gegants, la Senyera i els Nens)〉이 새겨져 있습니다.
까딸루냐의 정체성을 담은 세 면의 벽화
이 벽화는 건물의 세 면을 따라 이어집니다.
정면에는 까딸루냐 전통놀이인 인간탑(Castellers)과
거인 인형 퍼레이드(Los Gigantes)가 보이고,
오른쪽 벽에는 말을 탄 사람들과 춤추는 행렬,
왼쪽 벽에는 까딸루냐의 상징적인 원무인 사르데나(Sardana) 장면이 표현되어 있죠.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축제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함께’라는 정신, 즉 까딸루냐인의 공동체 의식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담았습니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이 벽화를 보며 사람들은 흔히 “아이의 그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피카소에게 ‘단순함’은 미숙함이 아니라 예술의 완성된 형태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이 문장은 그의 예술 철학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 —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이었죠.
그래서 그의 선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무상으로 남긴 피카소의 선물’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 벽화는 피카소가 무료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이 도시에 내 젊은 시절을 받았다”며
자신의 예술로 그 빚을 갚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에게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피카소가 시작되다
피카소는 스페인 남부 말라가(Málaga)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예술적 뿌리는 이곳 바르셀로나에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술학교 교수로 임용되면서 가족이 이주했고,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바르셀로나의 구도심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죠.
그의 대표작〈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 (Carrer d’Avinyó) 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피카소의 예술 세계는 이 도시의 거리와 사람들 속에서 자라난 셈입니다.
피카소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곳 — 보른 지구의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의 벽화를 감상한 후,
조금만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 바로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입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재 화가 피카소’가 아닌,
젊고 불안했던 예술가 피카소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14세 소년 시절에 그린 사실적인 초상화부터,
점차 단순함과 추상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흐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피카소가
어떻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대가로 완성되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도시가 왜 그에게 영원한 ‘예술의 고향’이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팁
📍 위치: Plaça Nova, 5, Ciutat Vella, 08002 Barcelona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 건물명: Col·legi d’Arquitectes de Catalunya (까딸루냐 건축가협회)
🎨 작품명: “Els Gegants, la Senyera i els Nens” (거인, 세녜라, 그리고 아이들)
🎫 연계 추천 코스: 바르셀로나 대성당 → 피카소 벽화 → 보른 지구 → 피카소 미술관
마무리하며
바르셀로나에는 화려한 건축물과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이 건축가협회 외벽의 피카소 벽화처럼
조용히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술도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운 천재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가장 따뜻한 흔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