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스페인 여행지로 선택하는 분이라면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àcia)를 걷다가 특별한 블록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가우디 (Antoni Gaudí)의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를 포함하여, 세 거장의 걸작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 '불화의 블록 (Illa de la Discòrdia)'입니다. 이 독특한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불화의 사과'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저는 이 건물들 속에 숨겨진 신화와 경쟁의 역사를 알면 카사 바트요, 카사 아마티에, 카사 예오 모레라, 이 세 건물이 왜 그토록 이질적이고 독창적인지 이해하게 되실겁니다.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황금기를 이끈 세 건축가가 펼친 세기의 대결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누가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예술가인가를 증명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신화 속 불화의 사과가 던져진 그라시아 거리와, 그 사과를 차지하려 했던 세 명의 여신이 바르셀로나의 세 거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헤쳐.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의 바르셀로나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서양 예술사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보도록 할께요.
목차
트로이 전쟁의 씨앗: 신화 속 '불화의 사과'와 세 여신의 대결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여신 테티스 (Thetis)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 (Eris)는 복수심에 불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황금 사과 하나를 던져 놓고 사라집니다. 이 사과를 두고 세 여신, 즉 헤라 (Hera, 결혼과 권위의 여신), 아테나 (Athena, 지혜와 전쟁의 여신), 그리고 아프로디테 (Aphrodite, 사랑과 미의 여신)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다투게 됩니다.
결국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Paris)의 심판을 통해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차지하는데, 이는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아내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게 되고, 이 사건이 결국 서양 고전 문학의 위대한 서사시인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첨부된 프랑수와 자비에 파브르 (François-Xavier Fabre)의 그림처럼, 화려함 속에 불길한 예감을 담고 있는 이 신화가 바로 바르셀로나의 한 블록에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19세기 말,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주도하며 누가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지 경쟁을 펼쳤는데, 이것이 곧 '불화의 사과'를 다투는 건축판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의 '불화의 블록': 세 거장의 걸작이 모인 그라시아 거리
바르셀로나의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 (Passeig de Gràcia)에는 약 100m 남짓한 짧은 구간에 세 채의 독창적인 모더니즘 건축물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 지역이 바로 '불화의 블록 (Illa de la Discòrdia)'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 블록이 특별한 이유는 당대 카탈루냐 모더니즘을 이끌던 세 명의 위대한 건축가가 동시에 한 블록에서 경쟁적으로 자신의 걸작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 주젭 푸이그 이 카다팔츠 (Josep Puig i Cadafalch), 그리고 류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Lluís Domènech i Montaner)는 서로 다른 건물주로부터 의뢰를 받아, 서로 옆집에 '나의 예술이 최고다'라고 외치는 듯한 건물들을 개조하거나 신축했습니다.
이 블록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걸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카사 모레라 (Casa Lleó i Morera): 류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작
- 카사 아마티에 (Casa Amatller): 주젭 푸이그 이 카다팔츠 작
-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 안토니 가우디 작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이 세 건물을 비교해 보면, 각 건축가의 철학과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고 심지어 이질적이어서, 이 짧은 공간에서 벌어졌던 예술 전쟁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세 여신과 카탈루냐 건축가: 모더니즘 거장들의 숨겨진 상징적 연결 고리
불화의 사과를 다투었던 세 여신은 불화의 블록의 세 건축가와 흥미로운 상징적 연결고리를 가집니다. 이는 공식적인 해석이라기보다, 바르셀로나 모더니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재미있는 해석입니다.
- 헤라 (Hera, 권위): 류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카사 모레라)는 전통적인 우아함과 정교한 장식으로 부유한 가문의 권위를 가장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능숙했습니다.
- 아테나 (Athena, 지혜): 주젭 푸이그 이 카다팔츠 (카사 아마티에)는 고딕 양식을 모더니즘으로 재해석하는 지적인 접근을 구사했습니다.
- 아프로디테 (Aphrodite, 미): 안토니 가우디 (카사 바트요)는 기존의 건축 관념을 깨는 유기적인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가장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바르셀로나의 '파리스의 심판'에서는 가우디의 파격적인 창조성이 가장 큰 주목을 받으며 황금 사과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창조적 혁신으로 승리한 '아프로디테' 건축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는 신화 속 아프로디테가 차지한 황금 사과처럼, 대중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고 불화의 블록에서 가장 독창적인 건축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건물은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입니다.
- 뼈와 해골의 파격: 카사 바트요의 외관은 충격적입니다. 발코니는 마치 해골 모양을, 기둥은 뼈를 연상시키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뼈의 집 (Casa dels Ossos)'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가우디는 직선을 거부하고 자연의 곡선과 인간의 신체 구조를 건축에 그대로 녹여냈습니다.
- 용의 비늘 지붕: 지붕은 카탈루냐의 수호 성인 성 게오르기가 무찌른 용의 비늘과 척추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트렌카디스 (Trencadís, 깨진 타일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여 햇빛에 따라 푸른색과 녹색이 다채롭게 반짝이는 지붕은 이 건물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살아있는 조형물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 빛의 마법: 내부 중정을 설계할 때, 아래층까지 균일하게 빛이 도달하고 공기가 순환되도록 타일의 색상과 창문의 크기를 층별로 다르게 설계한 가우디의 천재적인 공학적 계산이 숨어있습니다.
저는 카사 바트요를 볼 때마다 가우디의 상상력과 혁신이 경쟁자들을 압도하려 했던 창조적 열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카사 아마티에 & 카사 모레라: 권위와 지성이 담긴 위대한 경쟁작
불화의 블록의 나머지 두 걸작, 카사 아마틀례르와 카사 예오 모레라 역시 가우디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 모더니즘 건축의 백미입니다.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이 두 건물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 카사 아마틀례르 (Casa Amatller): 카다팔츠의 지적인 고딕 재해석
주젭 푸이그 이 카다팔크가 초콜릿 재벌 아마티에 가문을 위해 개조한 카사 아마티에는 신화 속 아테나처럼 지적이고 학구적인 깊이를 자랑합니다.
- 독특한 계단식 지붕: 이 건물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마치 네덜란드나 북유럽의 건물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박공지붕입니다. 이는 카다팔크가 카탈루냐 고딕 양식을 모더니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며, 건물의 역사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 섬세한 장식: 파사드 곳곳에는 아마틀례르 가문의 상징과 스페인 고전 신화를 담은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입구의 섬세한 돌 조각과 내부의 화려한 장식은 카다팔츠가 가우디와는 다른, 고전과 현대의 조화라는 길을 걸었음을 보여줍니다.
✅ 카사 모레라 (Casa Lleó i Morera): 몬타네르의 우아하고 화려한 꽃장식
류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의 카사 예오 모레라는 신화 속 헤라처럼 우아하고 왕실 같은 품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몬타네르는 팔라우 데 라 무지카 카탈라나로도 유명하며, 꽃과 식물 모티브를 정교하게 사용하여 건물을 장식했습니다.
- 총체적인 장식: 이 건물은 모더니즘의 '총체적 예술'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외벽의 섬세한 석조 조각은 물론, 창문과 발코니 난간의 철제 장식,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등이 모두 꽃과 덩굴풀 등 자연 모티브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 눈부신 창문: 층별로 다르게 디자인된 창문 장식과 발코니의 정교함은 당시 카탈루냐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며, 이 건물주 가문의 재력과 사회적 권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마무리하며: 불화의 사과가 남긴 바르셀로나의 예술적 영광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에 떨어진 '불화의 사과'는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은유입니다.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카다팔츠의 카사 아마티에, 몬타네르의 카사 모레라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자존심과 혁신을 겨루었던 세 거장의 경쟁 정신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스페인 여행 중 불화의 블록을 지나실 때, 이 건물들을 그냥 예쁜 관광 명소로만 보지 마시고, 고대 신화 속 세 여신과 세 명의 위대한 카탈루냐 건축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카사 바트요, 카사 아마티에, 카사 모레라의 독특하고 이질적인 매력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이 도시가 지닌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가장 깊이 있게 누리는 방법입니다.